일상2015.02.21 10:10
저번주 금요일 동생을 태우고 부산내려가는 길에 외할머니께서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이로인하여 이번설은 이렇게 장례식장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할머니의 임종을 못본것과 그간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부산의 가족들을 싱경쓰지 못한 것에 한이 쌓여 글을 남깁니다.

어릴적부터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않아 외할머니 밑에서 자랏고 어른이 되어서도 같이 지내면서 아침에 발로차서라도 손자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서울에서 오랜만에 내려갔을 때는 현관까지 나와 손자를 기쁘게 맞이하던 모습만을 저는 기억했는데, 불과 한달세에 생사를 넘나드느 병환이 찾아온 외할머니의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다음주에 꼭 찾아오겠다고 한 약속도, 임종하시기 1주일전에 일찍 와달라고 부탁한 외할머니의 마지막부탁도 지키지 못해드려 너무나도 마얀합니다.

이제는 한줌의 제가되어 사라진 외할머니, 후회와 용서의 의미로 이 못난손자는 태어나서 가장많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외할머니의 가족사를 장례식 마지막날에 외동딸인 어머니에게 들을 수 있었는데, 정말 불쌍한 우리 외할머니셨습니다. 마지막남은 가족인 외동딸 어머니와 외손자들을 한평생 챙기시느라
이생에서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제는 극락에서 행방불명된 외할아버지, 국민학교 입학도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단 아들과 다같이 모여 행복하게 사세요.

(고)최복숙(1934.08.29 ~ 2015.02.17)


혼자남은 딸인 우리엄마는 제가 더 잘 보살필께요.

이 글로 인해 저 처럼 후회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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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꿍스